동아시아 조사 스님들의 선을 한마디로 통칭하면 '무심선(無心禪)' 또는 '조사선'이라 부릅니다. 이 조사선에서 육조 혜능 이후 가장 중요한 대가를 꼽자면 마조도일, 백장회해, 황벽희운, 임제의현입니다.
선불교에서는 이 시기 위대한 도인들의 어록을 모아 '사가어록(四家語錄)'이라 불렀습니다. 8세기부터 9세기, 바로 선불교의 찬란한 황금시대였습니다.
이 황금시대가 지나 10세기부터 12세기에 이르며 무심선은 세 갈래 학파로 재편됩니다. 첫째는 10세기 법안종 영명연수에서 시작된 '염불선(念佛禪)', 둘째는 11~12세기를 거치며 묵묵히 앉아 세계를 비추는 '묵조선(默照禪)', 셋째는 묵조선의 정적인 수행을 소극적이라 비판하며 대혜종고가 새롭게 들고나온 '화두선(話頭禪)'입니다.
화두선은 대혜 스님이 무심선의 법맥을 이어받아 경산사 주지로 살며 창안한 것입니다. 당시 경산사는 훗날 오산십찰 중 최고로 꼽힐 만큼 강남 불교의 중심지였기에, 대혜 스님은 조정의 총리나 장관 등 고위 정치가들과도 긴밀히 교류했습니다.
그러다 정치적 소용돌이에 휘말려 결국 유배를 가게 되었습니다. 금나라와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주전파의 입장에 섰다가, 화친을 주장한 권력자 진회에게 밉보여 남송 조정의 피바람을 도인임에도 피하지 못한 것입니다.
대혜 스님은 척박한 유배지에서 오랜 세월 고민한 끝에, 자신이 깨달은 무심선의 명상법을 어떻게 하면 일반 대중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보급할 수 있을지 연구했습니다. 그렇게 마침내 '화두'라는 정교한 테크닉을 개발해 냈습니다. 사람들을 모아 임상 테스트를 거쳐 대성공을 거둔 후, 12세기부터 본격적으로 '간화선(看話禪)'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오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무심선이라는 한 뿌리에서 태어난 염불선, 묵조선, 화두선이라는 세 자녀는 각각 중국, 일본, 한국 불교의 메이저 그룹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현재 중국은 문화혁명을 거치며 선방이 초토화되어 어디든 '나무아미타불'만 찾는 염불선 위주로 남았고,
일본은 정토종과 더불어 묵조선을 닦는 조동종이 강세입니다.
반면 한국은 대대로 화두선을 정통으로 고수해 왔지만, 현재 대한민국 선방은 완전히 박살 나고 초토화된 상태입니다.
지금 수좌 스님들 중 정통 화두선을 제대로 잡고 공부하는 이는 몇 명 되지 않습니다.
간화선 선방을 열면, 정작 스님들의 반 이상은 미얀마식 위빠사나를 하고 있습니다. 앉아서 들숨날숨을 보며 '사띠(Sati, 알아차림)'가 어쩌고 하고 있으니 참으로 골치 아픈 현실입니다. 한국 불교의 전통을 지켜야 할 리더들 조차도 정통 화두선은 팽개치고 미얀마에 가서 사띠와 사마디만 찾는 지경이니, 이것이 현재 한국 불교의 엄연한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왜 찬란했던 화두선이 오늘날 이 모양이 되었을까요. 화두선 자체에 대중이 접근하기 어려운 심각한 문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1987년 은사 스님을 만나 '무자(無) 화두'를 받아 5년을 하다가 결국 안 되어 때려치운 경험이 있습니다.
한 번 처절하게 실패해 보았기에, '이 좋은 명상법을 어떻게 현대인에게 쉽게 전할 것인가'를 오랫동안 고민해 왔습니다. 그러다 현대적인 학습법을 연구하며 '질문을 활용한 방식'이 인간의 뇌를 깨우는 가장 강력한 도구임을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가만히 선종의 역사를 들여다보니, 과거 조사 스님들의 무심선이 바로 제자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 의문을 격발시키는 선이었습니다. 제자의 머리에 의문과 궁금증을 강렬하게 유발해 스스로 탐구하게 만드는, 아주 과학적인 테크닉이었던 것입니다.
스님들이 깨달은 인연을 모은 스토리가 '공안(公案)'이고, 그 공안의 핵심 맥락 중에서 내 머리와 가슴에 콕 박혀 도저히 의심을 지울 수 없게 만드는 치명적인 질문, 그것이 바로 '화두'입니다. 화두는 한 번 꽂히면 '얘는 도대체 왜 그랬을까?' 하고 밤낮으로 머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대혜 스님이 화두선을 창안할 때 착안한 아이디어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 맥락이 풀리자 무심선부터 화두선까지 선종의 역사가 제 안에서 일관되게 꿰어졌습니다. 그리고 원력이 섰습니다. '아, 내가 절에 들어와 밥값을 하려면 내가 알게 된 이 명쾌한 구조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고 가야겠다'는. 그렇게 정리하여 세상에 내놓은 브랜드가 바로 '무두선(無頭禪)'입니다.
처음에는 '무심 화두선'의 줄임말로 시작했는데, 지금은 현대인에 맞게 내용이 완전히 진화하고 발전되었습니다.
옛 선사들은 그렇게 만만한 분들이 아닙니다. 그 우주적인 절대성의 늪에 온몸으로 깊숙이 들어갔다가, 그 껍질을 완전히 깨부수고 당당하게 밖으로 걸어 나온 영웅들입니다. 철저하게 온몸으로 겪고 온 사람들이기에 대단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 절대성의 껍질을 벗어던지고 온전한 무심의 벌판으로 나아가는 수행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무두선의 기초 강의를 마쳤고, 이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조만간 책으로 출간할 예정입니다. 무두선의 핵심을 대중이 기억하기 쉽게 딱 한마디로 압축하면, "머리를 완전히 날려 발밑을 보다"입니다. 이 문장만 기억하시면 무두선의 정수를 관통한 것입니다.
책이 세상에 나오면 비로소 본격적인 무두선의 '제2부'가 화려하게 펼쳐질 것입니다.
